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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삐삐의 쉼터
삐삐의 노트

나 어릴적에~~

by 삐삐의 쉼터 2023. 8. 19.

나 어릴 적에는 사방 천지가 놀이터였다.

한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면 동네 아이들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골목으로 모여서는 연탄 쟁탈전에 나선다.

다 타서 버린 연탄재는 눈사람을 만드는데 꼭 필요한 준비물..

각자 자리를 잡고 연탄재를 한참 뒹굴려서는 눈, ,입을 만들고

양동이 모자까지 씌어 눈사람을 완성해서는

골목 어귀에 세워둔다.

그리고는 집으로 가서 아빠가 만들어주신 썰매를 들고 꽁꽁 얼어있는 개천으로 향한다.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썰매를 타고 있는데 어디선가 한 녀석이 스케이트를 가지고 나타나 으스대기 시작하면

너나 할 것 없이 한번 얻어 타보고 싶어서 우르르 그 옆으로 모여들어서는 온갖 아부를 다하다 포기하고

썰매타기에 집중.. 한참 썰매를 타고나면 그때쯤 손이 시려 워 지는데 그래도 집에 들어가기는 싫다.

 

잠시 후 집 앞 공터로 이동..

한 친구가 내린 눈을 발로 쓸어 모아놓고 단단하게 다지고 있다.

그리고는 오르락내리락 발 미끄럼을 탄다.

나도 만들어 타고 있는데 조금 있으니 아랫집 동생 녀석이 옆으로 와서 눈을 모아 조금

더 높이 만들고는 함께 타며 조잘거리고 그러기를 한 시간..

이제 그것도 지루해져 갈 때 쯤 또 한 친구가 어디선가 비료포대자루 하나를 가지고 나타난다.

너나 할 것 없이 또 우르르..........

약간 비탈진 곳으로 올라가서는

야 간다~~~

비켜 비켜 !!!

혼자도 타다가 기차처럼 여럿이서 허리춤을 잡고서 타다가는 구르고 넘어지고 호호 깔깔..

내려오다 밑에 깔린 친구는 아프다고 씩씩 되고 아무튼 이 미끄럼 놀이는 놀이 중에서도 제일 재미있는 놀이였다.

 

학교가 파하자마자 책가방을 던져놓고 밖으로 나와 노느라고 뉘였뉘였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어디선가... 병구야 !!! 하고 부르는 엄마 목소리에 놀라 다들 하나둘씩 집 쪽으로 뛰어간다.

게 중에도 꼭 한 녀석은 늦도록 동네를 배회하며 돌아다니고 그 아이 엄마는 이집 저집 찾아다니며

우리 애 못 봤니? 하시며 연탄집게를 들고 벼르고 계신다.

 

집에 들어와서 보면 엉덩이는 흙투성이요.

소매 끝은 흘러내리던 콧물을 연신 닦아냈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 빳빳이 굳어져있고

설에 아빠가 새로 사주신 운동화는 물에 흠뻑 젖어 엄마한태 혼이 나고...

 

잠시 후 엄마가 차려온 밥상 앞에 온 식구가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는데..

밖에서 또 병구야 ~~

놀자~~~ 하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는 또 어떤 놈이냐며 눈을 크게 뜨시고..

나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동생과 함께 또 다시 밖으로 향한다.

 

어두운 밤에 할 수 있는 놀이는 많다.

가로등 밑에서 하는 둥그런 딱지놀이, 양손에 나누어 쥐고 별이 많은 쪽 이라던가

글씨가 많은 쪽으로 가면 먹는 거다.

개중에 구슬로 하는 홀짝 게임은 진짜 스릴 있다. 참 어찌, 니 삼, 도 있었는데...

 

42녀 중에 셋째인 나는 밑으로 남동생만 셋이나 있다.

어느 날 동생들이 딱지나 구슬 (그 당시는 다마 라고 했다)을 다 잃고 오는 날이면 동생들을 앞장세워

내가 다시 가서 다 따서 들어오곤 했다.

그때 마루 밑 깡통 속엔 구슬이 한가득 들어있어 친구들이 눈깔사탕 하나주면 구슬 다섯 개 씩 을 주고서 바꾸어,

볼때기가 툭 튀어나오도록 입안에 넣고서는 쪽 쪽 빨아먹던...그 하얀 눈깔사탕 맛을 요즘 아이들은 아마도 모를 거다.

 

여름이 돌아오면 동네는 모두 우리들의 세상이다.

조금만 나가도 계곡이 있어 우리는 모두 하루의 반나절을 그곳에서 보내다시피 한다.

계곡물 웅덩이가 조금 깊은 곳으로 찾아가 수영을 하고 그러다가 심심하면 바위틈을 뒤져 가재와 물고기를 잡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담벼락 감나무에서 떨어진 떨떠름한 새끼 감들을 주어서 한입 비워 물고는

입안에 넣기도 전에 다들 퉤퉤 하며 던져 버리고, 우리 여자 아이들은 감나무 꽃을 주워서 둥글고

기다랗게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친구들과 지칠 때까지 놀다가 저녁때 집에 들어가면, 옷 끝은 연신 닦아 내던 콧물로 인해 빳빳해져 있고

손등은 터져서 갈라져 쓰리지만 노느라 정신 팔려 아픈 줄도 몰랐었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는 남동생은 나무라지 않고, 나한테만 계집아이가 뭐가 되려고

그러고 돌아 다니 냐며 호통을 치시면서 빨리 씻고 들어가 자라고 하시고는, 딸년을 저리 키워서 이다음에

시집이나 보내겠냐고 내가 아닌 엄마에게 오히려 역정을 내시곤 하셨다.

철이 없어 부모님이 걱정을 하시는지도 모르고 그저 동네 친구들과 노는 것이 좋았던 어린 시절,

기억의 저편엔 언제나 문득문득 생각나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추억이 한 묶음 내 머리 속에 남아있다.

 

십 여 년 전만 해도 우리 사무실이 있는 건너편에 논이 있었다.

겨울이면 동네 사시는 할아버지가 논에 물을 받아 스케이트장을 만들어 놓으시고는 만국기도 걸어 놓으셔서

가끔 나도 아이들과 가서 썰매와 스케이트도 빌려 타곤 했었는데...

이제는 논바닥에 만들어진 그런 스케이트장도 다 없어지고 찾아보기도 힘들어 너무 아쉽다.

 

요즘 아이들은 학원이다 뭐다, 너무 바빠 하루가 부족한 것만 같다,

한참 뛰어놀아야 되는 나이지만 놀 거리가 없어서 집에서 게임이나 컴퓨터에만 매달려 있는 현실

또한 참 답답하고 아쉽다..

예전에는 문밖에만 나가도 이리도 놀 거리가 많았었는데..

나의 철없던 어린 시절처럼 요즘 아이들도 자연을 놀이터삼아 자유로운 삶은 살아간다면 더없이 좋을 텐데...

올 겨울에는 시골 논 어딘가에서 예전처럼 또 다시 만국기가 펄럭였으면 좋겠다.

 

(17년 1월작성 23년 8월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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