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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의 노트

남편의 옷차림

by 삐삐의 쉼터 2023. 8. 19.

까만 청바지에 새까만 쫄티

이제 머리카락이 희끗희끗 변하기 시작한 남편의 평상시 옷차림...

 

청바지는 빨아도 기름때가 잘 지워지지 않아 군데군데 얼룩이 져있고

새까만 티셔츠는 햇빛에 발해 어깨 위만 누렇게 갈색으로 탈색이 되어있는.......

출근할 때 입는 옷, 퇴근할 때 입는 옷, 전혀 구분이 없는

IMF로 인해 한차례 부도를 맞고 생활이 힘들어 지면서 언제부턴가

변해버린 작업복 차림인 남편의 모습이다.

 

하는 일이 그렇다보니 직업이 그렇다보니 출, 퇴근이나 외출 할 때조차도

늘 상 기름때 묻은 작업복 차림의 똑같은 모습으로 다니고 옷을 사다줘도 일할 때 입어버려서

작업복으로 만들어 버리기 일수 인 남편이다.

 

한번은  친정집을 가는데 옷을 갈아입고 가라고 했더니 괜찮다고 하면서

끝내 그냥 작업복 차림으로 간적이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신 엄마가 내게 다가와서

조용히 하시는 말씀이 이 서방... 열심히 사는 모습은 보기 좋지만 동네 사람들도 보는데 

사위가 옷을 저렇게 입고 왔냐고....

너라도 챙겨주지 그랬냐고 하시며 나를 나무라면서 나도 내 사위 자랑하고 다니고 싶다고 하시는데

나는 순간 창피함에 얼굴이 화끈해져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속상한 마음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차 한잔 마시고 가자고 하고는

카페에 들어가 차를 마시면서 조용히 신랑에게 말했다.

 

여보!!! 나는 당신의 모습이 어떻든 상관하지 않아..

오히려 예전 생각 안하고 매일 작업복만 입고 열심히 일만 하는 당신이 고맙지

하지만 이제는 당신을 위해서라도 예전처럼 자신을 좀 꾸미고 살았으면 좋겠어..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나 가족들, 거래처분들, 가게에 오시는 손님들..

그리고 내 곁에서 나를 보아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에게 보여 지는 당신의 모습이나 옷차림이

나는 그들에게 지키는 예의라고 생각해.”

물론 내면의 모습이 더 중요하겠지만 내면의 모습도 겉모습이 맘에 들어야

들여다보려고 하고 더 많은 관심도 갖게 되는 게 나는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생각하는데..

당신이 왜 그렇게 작업복만 입고 지내는지 나는 이해하고 당신 맘도 잘 알지만

이제는 예전에 자신감 넘치던 당신의 모습이 보고 싶다

 

어쩌다 모임에 나가면 작업복차림에 우중충한 모습으로 사람들 틈에 서있는 당신 보면서

내 마음이 얼마나 속상하고 아팠는지 알아? 하고 말하니 묵묵히 듣고 있던 남편이 낸들 그러고 싶겠냐고 ...

하지만 빨리 일어서려면 어쩔 수 없지 않냐고...

그러면서 나도 이제는 이런 내 모습이 싫어진다고 하면서 그럼 당신이 옷 좀 사주라고 말하 길래

나는 그래 그럴게 .....

자기한태 진짜로 잘 어울리는 세상에서 젤로 멋있는 옷을 사줄게 하고 말했다.

 

워낙 스타일이 독특한 사람이라서 평범한 양복 같은 것은 어울리지가 않아 며칠 후 남편에게 어울리는..

남편이 원하는 스타일을 찾아 여기저기 헤맨 끝에 한 매장에서 케쥬얼 식으로 된 정장을 발견하고는

이 옷이다 싶어 얼른 입어보라 했는데 정말 옷이 날개라는 말이 틀리지는 않은것 같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남편의 모습에 나는 ...자기야!! 이 옷이 자기한테 너무 잘 어울리네 정말 멋지다...

어디 갈 때 만이라도 이렇게 차려입고 다니면 얼마나 좋아.. 하면서 엄지를 척 들어보였더니

남편도 맘에 들었는지 응.. 괜찮네 하면서 빙그레 웃는다.

 

그렇게 해서 나는 남편이 맘에 들어 하는 옷으로 케쥬얼 정장 두벌과 셔츠, 구두 등을 사들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경제적인 부담이 좀 크긴 했지만..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우는 남편이 그동안 안 쓰고 아끼고 살았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하지 하는 생각에 내 자신에게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언젠가 엄마 생신날 가족모임이 있었는데 남편이 새로 산 옷으로 차려입고 갖더니

엄마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언니는 나는... 다른 사람이 온줄 알았어...그렇게 차려입으니 완전 인물이 살아있네..

남동생들은 매형!!! 오늘은 연예인이 왔나 했어요.. 하면서 서로 박장대소 저녁을 먹는 내내 웃음꽃이 떠나질 않았다.

 

그런 말들이 듣기 좋았는지...

남편은 나도 옷만 잘 차려 입으면 괜찮은 인물 이라구요.

하면서 멋쩍게 웃음을 보였다.

제 눈에 안경 이라고 했던가? 멋지고 잘생겨 보이는 얼굴로 어디 나가서도 당당한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더불어 내 어께도 으쓱 해졌던 건 나만의 착각이 였을까?

 

일할 때는 기름때 묻은 까만 작업복이 잘 어울리지만 차려입으면 케쥬얼 슈트가 더 잘 어울리던 남편

그런 남편이 몇해 전 병을 얻어 지금은 아프다.

이제는 멋쟁이 슈트를 입혀 나도 구부정한 모습에 영 스타일이 살아나질 않으니 입기 싫다고

본인이 편안 한 옷만 입겠다고 때를 쓴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병원 외출에 나서는 남편을 위해 옷을 고르고 있다.

아플수록, 나이 들수록, 몸가짐이 깨끗해야 하는 거라며,

그럴 때마다 나는 최대한 남편에게 어울리는 옷을 골라준다.

그래도 멋진 내 남편이니까.

나는 내 남편의 멋짐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2016년 7월 작성, 23년 8월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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