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 앞에서 주춤주춤 머리를 쓸어 넘기며 문을 나서는 남편에게서
이제는 비릿한 기름 냄새 대신 달콤하고 은은한 향수 냄새가 난다.
한 달 전부터 다니게 된 주간보호센터 선생님께서 집 앞에 미리 와 기다리시면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면 남편은 굽어진 몸, 뛰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하나씩 옮기면서 어눌하지만
커다란 목소리로 좋은 아침입니다. 하며 차에 오르고
나는 그 소리에 빙그레 웃으며 차 안에 앉아있는 남편을 보면서 파이팅~~~
오늘도 재미있게 보내고 잘 갔다 와요, 하며 손을 흔들어 준다.
몇 해전 오랜만에 둘만의 외출 길에서 앞서 걸어가던 남편의 뒷모습을 보았다.
어라, 이상 하네 걸음걸이가 왜 저러지?
남편을 불러 같이 걸으면서 물었다.
글쎄 나도 이상하네, 며칠 전부터 머리도 좀 어지럽고 걸을 때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느낌이 드는 게
병원에 가봐야 될까? 하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워낙 운동도 하고 건강만은 자부했던 사람이라 신랑은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하고
나는 그런 남편이 걱정이 돼서 검사라도 받아 보자며 다음날 병원에 진료 예약을 해두었고
며칠 후, 검사를 받은 병원에서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남편은 갈수록 이상증세를 호소해 좀 더 큰 병원으로, 그리고 뇌신경 전문 병원으로 가서
입원까지 해가면서 검사를 했는데 이 역시도 이상이 없단다.
우리 부부는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이해할 수가 없었다.
평소에도 스스로 건강 관리하며 운동도 하고 술, 담배도 하지 않는 남편이다.
남들 다 가지고 있다는 고혈압 당뇨도 없고 피검사. 소변검사도 깨끗하다는데...
걱정하고 있는 우리에게 옆에서 듣고 계시던 지인이 아산병원에 가서 진료 한번 받아 보라고 권하셨고
우리는 마지막으로 가보자고 하면서, 예약하고 교수님을 만나 상담하니 검사 한번 해보자 하셔서
일주일 동안 입원하여 이것저것 검사를 했다.
며칠 후...
큰 병이 아니기만을 바라며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는 길.....
초조한 기다림 끝에 교수님께 들은 말은 이름조차도 생소한 다계통 위축증이란다.
인터넷을 뒤져보고 유튜브 에 올라온 관련 글들을 읽어가며 알아보니
파킨슨 병도 아니고 진행 속도도 빠르고 예후가 더 안 좋다는 병이 다계통 위축증이란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잡아 의자에 앉고서는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뒤이어 신랑이 나오더니 옆에 앉으며 애써 말한다.
잘 치료하면 나아지겠지..
걱정하지 말고 집에 가자...
이렇게 남편과 나는 기나긴 병과의 사투를 시작하게 되었다.
신랑은 나름 열심히 운동도 하였고, 어느 날은 곰배령 산에 가보고 싶다 해서 힘들지만
아들과 함께 도전, 정상에도 올랐었다.
나는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라며 인간 승리라고 엄지손을 들어주었고
이렇게 이 년여 동안은 감사하게도 별다른 증상이나 변화 없이 지나갔다.
그런데 삼 년쯤 지나면서부터는 눈에 띄게 병이 진행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걸음걸이가 휘청휘청거리고 허리가 굽어지고 손은 더 떨면서 말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어눌해졌다.
아.. 진행이 빠르다더니 이렇게 빨리....
마음이 아프지만 가만 이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남편에게 내가 더 아프게 만들지 않을 거야!! 걱정하지 마, 그러니 당신도 힘내, 파이팅~~
하면서 우리 운동 가자 하면, 그렇게 운동을 좋아하던 남편도 이제는 싫어 소리를 한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은 말을 듣지 않고 자꾸 무기력해지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나는 그 순간 악처가 돼기로 마음먹는다.
안돼~~~
그래도 운동은 해야 되 우리 나가서 맑은 공기 마시고 조금만 걷다가 들어오자,
그러면 남편은 또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선다.
휠체어를 찾는 남편에게 나는 또 안돼.... 힘들어도 조금씩 걸어야지 휠체어 타기 시작하면
금세 걷지도 못하게 될 거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휠체어 대신 차에다 커다란 워커를 싣는다.
둘레길 공원 근처로 가서 주차를 하고 다시 워커를 꺼내여 신랑과 함께 보폭을 맞춰가며 걷다가
벤치에 앉으면 신랑은 나오니 좋네, 역시 당신 말을 들어야 돼~~ 하면서 살며시 내 손을 잡아주곤 한다.
서너 시간쯤 지난 후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시키고 나도 씻고 앉으면 힘이 들어선 지
아니면 집으로 무사히 돌아온 안도감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돈다.
그도 그럴 것이 175 키에 몸무게 85킬로가 나가는 신랑 옆에 150센티 48 키로의 내 몸으로
지탱해 주려니 지팡이를 잡지 않은 한 손은 언제나 나에게 힘을 주며 의지하게 되고
외출해서 들어오면 잡았던 팔과 어깨 에선 경련이 일어 어쩔 수 없이 여기저기 파스를 붙이게 된다.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신랑은 내가 당신한테 미안하네... 를 반복한다.
나는 별소리를 다 한다며 당신은 이렇게라도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만 주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셔~~
하면서 웃으면, 남편의 표정 없던 얼굴에서 희미한 미소가 새어 나온다.
다계통위측증으로 진단받은 지 벌써 오 년째....
이제는 급격히 빨라진 진행으로 외출조차도 쉽지 않아 졌다.
그럼에도 남편은 주간 보호 센터에 가겠다고 결심을 해주었다.
물론 집에서 무기력하게 가만 이 있는 것보다도 요즘은 시설도 좋아지고 유치원 하고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하여 노치원이라고도 한다는데, 그곳에서 사람들도 만나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도 같이 하다 보면
남편에게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나의 계산에 의한 것이지만 나이 드신 분들과 치매 환자분들도
계시다 보니 서로들 싸우는 모습도 보게 되어 가끔은 가기 싫다고 투정도 부린다.
맞다.
신랑은 이제 겨우 68세다.
너무 젊은 나이다.
나는 내 부모님처럼 생각하면 되지
다들 아픈 분들이니 자기가 아들처럼 해드려~~ 하고 말한다.
어제는 집에 돌아와 자그마한 손거울 하나를 내게 건네주면서 게임해 이겨서 타왔다고 한다.
나는 헐~~
아니 나이 드신 분들한테 져드려야지 그걸 이겼냐고 했더니, 선물을 보니 내게 갖다주고 싶어서
욕심이 났다고....
나는 고마워~~ 말하며 웃음이 나와 얼마나 웃었던지, 신랑의 마음이 고마웠다.
아무리 힘들어도 짜증 한번, 화 한번 내지 않는 남편이....
나보다 더 힘들 텐데도 나를 먼저 생각해 주는 남편이.... 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노력하고 참아보자
분명 좋아질 거야~~
아니 우리 좋아지길 바라진 말고, 이 정도만으로도 감사하며 살자
이보다 더 나빠지지만 않으면 되지 하고 말하면
남편은 어눌한 목소리로 조금만 기다려봐 내가 빨리 나아서 호강시켜 줄게 한다.
결코 좋아질 수도 나아질 수도 없는 병인 것을....
갈수록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돌려 말하는 남편의 모습을 볼 때면 나는 가슴 한편이 아려와 베란다로 향한다.
일 년 열두 달을 쉬지 않고 손에 기름때 묻히며 살아온 사람...
옷을 빨려고 집으면 비릿한 기름 냄새가 코끝을 자극해 저절로 인상이 써졌던 날들이 있었다.
그러나 일을 손에 놓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은 남편에게서 기름 냄새 대신 향긋한 냄새가 난다.
아플수록 옷차림도 깨끗이 하고 몸에서 냄새도 않나게 해야 된다고 말했더니
아침마다 머리를 감겨달라 하고, 어느 날은 옷에 뿌리는 향수 하나만 사다 달라고 해서 사다 주었다.
남편이 문 앞에서 거울을 보며 구부정한 몸으로 휘청거리면서도 머리를 빗고, 옷매무새를 만지고 나면
나는 마지막으로 향수를 뿌려주면서 역시 우리 신랑 멋짐은 포기 못하지 하면,
신랑은 씩 웃으며 싫지 않은 표정으로 집을 나서고 나는 또 오늘도 파이팅~~~~ 을 외치며 남편을 배웅을 한다.
나는 요즘 그런 순수한 남편의 모습이 좋다
하지만.... 가끔 씩 남편에게서 느껴지던 그때의 비릿한 기름 냄새가 그리워지기도 해
그럴 때면 나는 눈물 대신 아자아자 파이팅~~ 을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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