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삐삐의 쉼터
좋은글,좋은음악

[스크랩] 어느남편의 일기

by 삐삐의 쉼터 2012. 6. 22.

이름을 밝히지 않는 어느 남편의 일기

결혼8년 차에
접어드는 남자입니다.

저는 한 3년전 쯤에 이혼의
위기를 심각하게 겪었습니다.

그 심적 고통이야

경험하지 않으면 말로 못하죠

저의 경우는 딱히 큰 원인은 없었고
주로 아내 입에서 이혼하자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더군요.

저도 회사생활과 여러 집안 일로
지쳐있던 때라 맞받아쳤구요.

순식간에 각방쓰고
말도 안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대화가 없으니
서로에 대한 불신은 갈수록 커 갔구요.

사소한 일에도 서로가
밉게만 보이기 시작했죠.

그래서 암묵적으로 이혼의
타이밍만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들도 눈치가 있는지
언제부턴가 시무룩해지고
짜증도 잘내고 잘 울고 그러더군요.

그런 아이를 보면 아내는
더 화를 불 같이 내더군요.
계속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이가 그러는 것이 우리 부부 때문에
그런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요.

가끔 외박도 했네요.

그런데 바가지 긁을 때가 좋은 거라고
저에 대해 정내미가 떨어졌는지
외박하고 들어가도 신경도 안쓰더군요.

아무튼 아시겠지만 뱀이 자기 꼬리를 먹어
들어가듯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이었답니다.

그러기를 몇 달,

하루는 퇴근길에 어떤 과일 아주머니가
떨이라고 하면서 귤을 사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기에 다 사서 집으로 들어갔답니다.

그리고 주방 탁자에 올려 놓고 욕실로
바로 들어가 씻고 나오는데,
아내가 내가 사온 귤을 까먹고 있더군요..

몇 개를 까먹더니 "귤이 참 맛있네"
하며 방으로 쓱 들어가더군요.

순간 제 머리를 쾅 치듯이
하나의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아내는 결혼 전부터 귤을
무척 좋아했다는 것하고,

결혼후 8년 동안 내 손으로 귤을 한번도
사들고 들어간 적이 없었던 거죠.

알고는 있었지만 미처
생각치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 순간 뭔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예전 연애할 때, 길 가다가 아내는
귤 좌판상이 보이면 꼭 천원어치 사서

핸드백에 넣고 하나씩 사이좋게
까먹던 기억이 나더군요.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해져서
내 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울었답니다.

시골집에 어쩌다 갈때는 귤을 박스채로
사들고 가는 내가 아내에게는 8년 간이나

몇 백원 안하는 귤 한 개 사주지 못했다니
마음이 그렇게 아플수가 없었습니다.

결혼 후에 나는 아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신경을 전혀 쓰지 않게 되었다는 걸 알았죠.

아이 문제와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말이죠.

반면 아내는 나를 위해 철마다 보약에
반찬 한가지를 만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신경 많이 써 줬는데 말이죠.

그 며칠 후에도,
늦은 퇴근길에 보니 그 과일
좌판상 아주머니가 보이더군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또 샀습니다.
저도 오다가 하나 까먹어 보았구요.

며칠전 아내 말대로 정말 맛 있더군요.


그리고 살짝 주방 탁자에 올려 놓았죠.

마찬가지로 씻고 나오는데
아내는 이미 몇개 까먹었나 봅니다.

내가 묻지 않으면 말도 꺼내지 않던
아내가 " 이 귤 어디서 샀어요? "

" 응 전철 입구 근처 좌판에서 "
"
귤이 참 맛있네 "

몇 달만에 아내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잠들지 않은 아이도
몇 알 입에 넣어주구요.

그리고 직접 까서 아이 시켜서
저한테도 건네주는 아내를 보면서

식탁 위에 무심히 귤을 던져놓은 내 모습과
또 한번 비교하며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뭔가 잃어버린 걸 찾은 듯 집안에
온기가 생겨남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아내가 주방에
나와 아침을 준비하고 있더군요.

보통 제가 아침 일찍 출근하느라 사이가 안
좋아진 후로는 아침을 해준적이 없었는데.

그냥 갈려고 하는데, 아내가 날 붙잡더군요.
한 술만 뜨고 가라구요.

마지못해 첫 술을 뜨는데,
목이 메여 밥이 도저히 안넘어 가더군요.

그리고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도 같이 울구요.

그리고 그동안 미안했다는 한마디 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부끄러웠다고 할까요.

아내는 그렇게 작은 일로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작은 일에도 감동받아

내게로 기대올 수 있다는 걸 몰랐던 나는
정말 바보 중에 상바보가 아니었나 싶은게

그간 아내에게 냉정하게 굴었던
내 자신이 후회스러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후, 우리 부부의 위기는
시간은 좀 걸렸지만 잘 해결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가끔은
싸우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귤이든 뭐든 우리 사이에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주위를 둘러보면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 옮긴 글 -

출처 : 부여 남산초등학교 동문회
글쓴이 : 은 준 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