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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의 노트/수필 마당

가을 운동회 추억

by 삐삐의 쉼터 2026. 5. 7.

가을 운동회의 추억

 

온몸을 땀으로 적시던 따갑던 햇살이, 이제는 그리움 속에 자취를 감추려 하고 어느덧 신선한 밤공기가 상쾌함을 전해주고 있다.

저녁을 먹고 아들과 함께 동네 산책을 하다 보니 초등학교 정문에 가을 운동회를 한다는 커다란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 맞다. 맞아, 예전에도 이맘때쯤 운동회를 했었는데~

잠시 그때의 추억들이 생각나 아들과 함께 운동회 하던 날 이야기를 나누며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다.

 

나는, 가을 운동회 하면 지금도 잊히지 않는 일이 있다.

성남에 있는 중원 초등학교에 다녔는데 학생 수가 한 반에 60명 정도로 꽤 많았었고, 운동장을 삥 둘러 엄청 큰 스탠드가 있었다.

4학년 가을 운동회가 있던 날, 참 그때는 초등학교라고 안 하고 국민학교라고 했다.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달리기를 하라며 반 대표로 뽑아 주셨다.

기분이 좋아 집으로 달려가는데 신고 있던 운동화가 다 헤어져 헐렁헐렁 벗겨지고 말았다. 어린 마음에 이 신발을 신고서는 일등을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집으로 오자마자 엄마에게 조르기 시작했다.

물론 집안 형편이 좋지 않다 보니 사줄 거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달리기 시합에 나가야 한다고, 잘할 테니 운동화만 사달라고 밥도 안 먹고 며칠을 엄마 옆에 붙어 졸랐다.

결국 엄마는 아빠에게 말씀드려 앞에 네모난 모양의 백설 공주 얼굴이 그려져 있는 빨간 운동화를 사 주셨다.

너무 좋아 신지도 않고 잠잘 때도 운동화를 꼭 껴안고 잤다.

 

운동회 날 아침,

운동화를 신고 학교 가려고 나서는 나에게 이따 엄마도 가서 볼 테니까 달리기 잘해라,” 하시면서 운동화 새것이니까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하고!!!”

나는 엄마의 당부는 귓전으로 들은 채 하늘을 나는 기분으로 학교로 달려 갖다.

오전 운동회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새 운동화는 닳을까 아까워 스탠드에 벗어두고, 헌 운동화를 신고서 엄마를 찾으며 돌아다니다 만난 엄마는, 네게 새 운동화는 왜 안 신었냐고 물으셨다

나는 달리기할 때 신으려고, 아끼느라 스탠드에 벗어두고 왔지,” 했더니 대뜸. 하시는 말씀이 뭐라고. 이놈의 계집에 가. 누가 집어 가면 어쩌려고. 빨리 가서 찾아와!!!”

그때만 해도 누가 집어 갈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않았는데. 혹시 하는 마음으로 스탠드를 두, 세 칸씩 가로질러 운동화를 벗어둔 곳으로 뛰어 갖다.

그런데 아뿔싸!!!

운동화가 있긴 있었는데 새로 산 깨끗하고 예쁜 내 운동화는 누군가가 가져가고 그곳에는 낡디낡은 운동화 한 켤레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누가 일부러 바꿔 신고 간 것이 틀림없었다.

울먹거리며 정신없이 여기저기 찾아다니다가 결국 운동화는 찾지도 못하고 달리기도 꼴등 하고, 점심 도시락도 못 먹고, 엄마에게 야단만 배불리 먹었다.

어린 마음에 집에 가면 아빠에게도 야단맞을 생각에 겁이 났다.

잔뜩 겁먹고서는 늦게서야 집에 들어갔는데 다행히도 아빠는 다음부터는 조심해라,” 한마디만 하시는 게 아닌가.

. 살았다.

 

며칠 후 엄마는 운동화 한 켤레를 다시 사주셨다.

그런데, 동네 친구들하고 신발 멀리 던지기 놀이를 하다가 그만, 한 짝이 높디높은 남의 집 지붕으로 올라가 버렸다.

결국 그날은 내 잘못이라 뭐라 말도 못 하고 엄마, 아빠에게 눈물 콧물 쏙 빠지게 혼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잊지 못할 추억이 되어 웃고 있지만 그때는 어린 마음에 이제는 죽었구나 싶어 집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동네를 배회하다 아빠가 잠든 뒤에야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 탓에 명절날이 되어야 옷이나 신발 한 켤레를 겨우 사주셨던 우리네 부모님들, 빨간 운동화와 주름치마를 선물로 받고 너무 좋아서 품에 안고 자던 나와 동생들, 명절 아침이면 새 옷을 입고 나타나 반짝반짝 빛나던 친구들의 변신이 신기하기만 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요즘은 아이들에게는 부족함이란 없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고가의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고, 메이커 신발에 옷까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부모들은 무엇이든 해주고 만다.

옛날처럼 형의 책가방을 물려받거나 언니의 옷을 물려받아 입었던 그런 일은 이제 상상도 할 수가 없다.

오죽하면 고가의 옷을 사달라는 아이들 탓에 마지못해 사주고야 말아 등골 브레이크라는 말이 나왔을까?

 

언젠가 근처 학교에서 운동회를 한다기에 구경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다 모일 수 있는 운동장이 작아서 일부는 학교 강당에서 실내 체육을 하고, 오전에는 저학년이, 오후에는 고학년이 나뉘어서 한단다.

예전처럼 만국기도 없고 맛있는 도시락을 싸 온 학부모들도 보이지 않았다.

점심은 급식실에서 준다니, 운동회를 하는 재미가 있을까 싶다.

 

어떤 동네에서는 시끄럽다고 학교로 민원이 들어와 아이들이 응원하며 함성도 지를 수도 없고 오히려 죄송하다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고 하니,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이렇게 각박한 세상이 되었는지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살기 힘든 시절이었지만 김밥 한 줄에 콜라 한 병만 있어도 웃음을 감추지 않던 어린 시절의 가을 운동회는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벌이는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그런데 요즘 운동회는 학생 수도 점점 줄어들어 축소되고 재미가 없어지는 것 같아 나조차도 아쉬운 마음이 크다.

어른들의 마음이 조금은 너그러워져 만국기가 펄럭이는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함성이 울려 퍼지고, 원 없이 뛰어놀 수가 있게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이 우리 어른들이 할 일이 아닐까.

 

(아들 초등학교 2학년 운동회때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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