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생활문예대상 입선작 입니다.^^
평화로운 주말 아침, 갑자기 핸드폰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밤새 잠을 설친 탓에 더 자고 싶어 받지 않으려 했지만, 쉴 새 없이 울리는 것을 보니 받을 때까지 끊지 않을
친정 엄마의 호출 벨 소리가 틀림없어 비몽사몽 전화를 받았다.
언제나 똑같은 레퍼 토리로 다짜고짜 물으신다. "어디야? 뭐해?"
"오늘 날씨가 좋은데 아직도 자는 거야?"
뒤끝이 조금은 올라간 목소리로, 전화해하시는 말씀, 뻔히 집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는 으레 물으신다.
꼼짝 할 수 없는 나의 사정을…. 괜찮니? 하는 물음을…. 너, 힘든데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느냐는 말을….
물어보는 대신에 에둘러하시는 말씀이다.
한여름 무더위와 남편의 병간호에 지쳐 갈 때 즈음이면, 아무리 몸부림쳐도 몸은 한계 치 에 다다르고
마음은 무너져 때때로 우울 감 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이런 나의 SOS가 전해지는지 한동안 뜸했던 엄마의 전화벨 소리가 잦아진다.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엄마는 대 뜸, “우리 여행 가자,” 하신다.
표면적으로는, “당신께서 답답하니 어디, 나 좀 데려가서 바람이라도 쐬어 달라는,” 요청이지만,
그 내 막에는 고생하는 딸이 숨 쉴 수 있도록 일 년에 한, 두 번, 나와 언니를 위해 숨구멍을 열어주기 위한 엄마의 긴급 처방 전이다.
물론, 치료 후의 약효는 언제나 효과가 좋았다.
친정 엄마는 올해 구 순을 넘기셨다.
언니는 70세, 나는 64세…. 이제는 모두 다, 움직임도 예전 같지가 않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 셋 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말처럼, 우리 세 모녀도 함께 만나면 그야말로 겁날 게 없었고,
훨훨 날아다니며 어디든 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세월에 변해버린 육신은 맘먹은 대로 될 리가 없었고, 각자 변해버린 가정환경 탓에 여행은 꿈도 못 꾸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구십이 넘은 노모의 호출로 어쩌다 떠나게 되는 일상 탈출은 잠깐의 시간이지만 나에게는 강력한
자 양 강장제가 되어 새로운 활력소를 주곤 했다.
엄마는 그런 것을 아시기에 못 간다는 나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날짜를 잡고 동생을 시켜 숙소를 예약해 두셨다고 하셨다.
남동생이 “누나도 운전하려면 힘들고, 엄마 다리도 아프신데 힘들지 않겠냐고,” 하는 말에도, 엄마의 마음은 요지부동, 끄떡없다
요즘은 거의 모든 여행지가 걸어서 다녀야 하고, 계단으로 만들어진 곳들이 많아서, 엄마가 가기에는 무리인 장소들도 많지만
엄마는 믿는 구석이 있어 걱정하지 말라고 만 하신다.
여행을 갈 때면 엄마의 가방에 가득 넣어오는 최 애 비상약, 그건 바로, 붙이는 파스다.
다리에 온통 붙여 놓으면 효과 만점인 엄마의 만병통치 약!!!
그 힘으로 엄마는 아픔을 무릅쓰고 걷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언니는 손녀딸 봐주기를 하루 빼먹고, 나는 남편을 아들에게 부탁하고, 1박 2일 세 모녀가 짧은 여행을 가기로 한 날
오랜만에 맡아보는 코끝을 강타하는 강렬한 냄새, 차 안에는 이미 엄마가 붙이고 온 파스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왁자지껄 세 모녀가 함께하는 시간,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맞춰 놓고 출발 신호를 보내면, 오 분도 안 되어 뒤에 앉은
엄마와 언니의 토크는 시작되고 할 말이 얼마나 많은지 차 안은 이내 시끄러워진다.
예전에는 여기저기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아 바쁘게 돌아다니곤 했었는데 이제는 예전의 엄마가 아니다.
언니 또한 엄마 나이가 되어가고, 나는 언니의 나이가 되어가고, 함께 나이가 들어가니
이제는 모든 것을 천천히 엄마의 보폭에 맞추게 되었다
늦은 여름인데 도 날씨는 여전히 덥고 태양은 뜨겁기만 하다.
가는 길에 휴게소가 나오면 쉬엄쉬엄 쉬어가며, 정해 놓은 숙소가 있으니 걱정할 것도 없고. 그냥 함께 간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모녀는 마냥 싱글벙글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동생이 예약해 놓은 숙소, 오랜만에 강원도 평창으로 가는 길에 엄마가 좋아하는 산에 가보려 발왕산으로 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랐다.
한쪽에 천년 수목 길이란 이정표가 보였다.
나는 엄마에게, “다리 아프니 거기는 올라가지 말자” 했더니, 엄마는 그래도 “천천히 가보자” 하신다.
참, ‘노인네. 힘도 안 드시는지,’ 언니와 나는 엄마를 보고 웃으며, 그럼? “가봅시다”? 하고는 함께 천천히 걸었다.
다행히 나무데크를 깔아 놓아 길은 평평했지만 짧지 만은 않은 거리였는데, 여기저기 구경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정상 부근까지 올라갔다.
오고 가던 사람들이 엄마를 보고는 “아니 할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데, 여기까지 올라오셨어요?” 하고 물으니 “나요? 난 이제 팔십이오.”하며 엄마는 말하신다.
그러면 나는 옆에서 살짝 웃으며 “구십이세요.”하고 말하면, 사람들은 모두 다”와!!! 대단하신데요.”
“할머니 최고예요.”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주고, 엄마의 얼굴은 이내 뿌듯함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엄마는 나이 많은 것이 싫으신지 누가 물어보면 언제나 팔십이라고 말하고, 어떤 때는 창피하다고 지팡이도 안 든다고
고집을 부리실 때가 있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면서 '참 이상 하시네? 왜? 그런 고집을 부리실까?’ 싶다 가도, 한 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도시를 벗어난 상쾌한 바람이 맛있다.
나는 입을 벌리고 코를 벌렁거리며 연신 바람을 들이마시고, 엄마와 언니는 역시 올라오길 잘했다며 내려다 보이는 풍경에
“아!! 좋다. 너무 좋다.”를 반복하고, 우리는 느지막이 내려와 숙소에 도착했다.
엄마는, “오늘 저녁은 내가 살 테니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하신다.
나는 “정말? 엄마 그러면 고기 먹으러 갈까?”? 했더니 흔쾌히 그러자 하셔서 평창에서 유명하다는 식당으로 모시고 갔다.
맛있는 음식에 맥주 한 잔씩 곁들이며 지난날 여행 다니며 즐거웠던 시절 이야기를 하다가 다들 마시지도 못하는
술 한잔에 취한다면서 호호 깔깔, 모처럼 세 모녀가 배꼽을 잡으며 웃고 있었다.
그렇다, 엄마는 이런 것을 원했던 것이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 라기보다는, 요즘 건강이 안 좋아 힘들어하는 첫째 딸과 남편의 병간호로 늘 바 쁘게 만 사는
둘째 딸을 위해서, 애써 내색하지 않으며, 그저 한 번씩 은 편안히 숨 쉴 수 있는 시간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고 싶으셨던 것을,
또 이렇게 함께 하고 서야 뒤늦게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어스름 해가 지고, 맥주 한잔에 살짝 취한 우리는 대리 운전을 불러 숙소로 돌아왔다.
잠자리에 누워 준비해 간 마스크 팩을 엄마와 언니 얼굴에 붙여주고 내 얼굴에도 붙이며, 뭐가 또 그리 우스운지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마냥 웃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수다는 엄마의 코 고는 소리와 함께 이내 침묵 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는 늘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오늘이 집으로 가는 날이 아니고 출발하는 날이었으면 좋겠다고….” 나도 그랬다.
더 오랜 시간 엄마와 지내면서, 이야기하고,?웃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늘 뒤로 하고 돌아온다.
나에게는 언제나 존재 만으로도 힘이 되는 엄마, 나는 그런 엄마의 호출로 또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엄마의 하루하루 시간은 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려 온다. 지친 듯 비스듬히 창가에 기대어
눈을 감고 계시는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힘없는 노인이, 자식들을 위해 더 강해지려 안간힘을 쓰고 계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엄마를 위한 시간조차도
내어 주질 못하고 있으니, 불 효녀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아직은 다들 무탈하니 앞으로 이런 날이 또 오지 않을까
못난 딸을 위해 서 라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 주시기를, 그때는 딸인 내가 먼저 호출해 엄마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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